국악기는 국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반론] 국악기는 국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홍상진

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으로 있는 최상화씨께선 서양클래식음악 콤플렉스가 있다고 합리적 추정한다. 그가 경기일보에 기고한 “국악기 진화해야한다.”는 글이 그 증거다. 

그는 서양음악 중심으로 우리 국악기를 바라보았다. 먼저 서양교향악단을 모방한 국악기합주의 문제점으로 시작하여 “20년이 지난 지금도 앙상블연주에 한계점을 드러낸다.” 말한다. 이 말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서양의 오케스트라가 우리의 궁중음악을 20년동안 연주하려 노력했는데 과연 한계점이 없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이 큰 문제점인양 말하는 것이다. 본인이 직접 서양교향악단의 모방이라고 전제를 두지 않았는가? 고유한 것을 다른 무언가가 모방해서 그것을 따라가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서양교향악단이 인도음악을 힙합을 백날 해봐야 한계가 있다.

그는 말한다. “중국, 일본,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20세기 세계음악을 받아들이고 연주가 안 되는 악기는 개량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세계음악을 연주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세계음악이라는 말을 풀어 이야기 하면 서양 클래식음악을 뜻한다. 세계가 얼마나 넓은데 서양의 평균율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이 세계 전부인양 말하는 오류가 있다. 그리고, 세계화 이 말에는 우리가 뒤떨어졌다는 불순한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우리 국악도 세계속의 음악이다. 그리고 우리악기로 중국음악도 잘 연주 할 수 있고, 일본, 북한 음악도 잘 연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황당하고 웃긴 것은 중,북,일이 평균율로 음정을 맞추었다고 우리도 바꿔야 한다는 어린아이 같은 주장이다. 옆집 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사면 가지고 있던 장난감을 버리고 옆집 아이 것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식이다. 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의 자리는 어린아이처럼 국악을 서양화하자고 때쓰는 자리가 아니다.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우리 음정을 지키는 대한민국인데 음정을 남이 버린다고 우리도 버리자는 주장!? 괘씸하다. 

솔직히 내가 최상화씨의 주장에서 느끼는 것은 서양 클래식 음악들을 연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유명한 몇몇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설령 악기를 모두 개량했다고 치자, 무슨 곡을 연주 할 것인가? 서양클래식 작곡가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과연 누구의 곡을 연주 할 것인가? 예상컨데 스메타나같은 작곡가의 음악은 절대 연주 하지 않을 것이다. 서양의 악단들도 전통이 있고, 자신들이 하는 레파토리가 있다. 아무 곡이나 선정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바흐만 연주하는 팀도 있고, 왈츠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팀도 있다. 과연 국악단의 이름으로 서양의 어떤 전통적인 클래식을 꾸준히 연주할 것인가? 그냥 유명한 곡을 선정해서 관객 몰이용으로 연주 할 것이 뻔하다. 국악단이란은 이름으로 서양음악 앵벌이를 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서양오케스트라는 앙상블 중심이고 우리 전통악기는 독주 악기이므로 태생부터가 다르다.”고 그럼 우리나라 궁중음악은 모두 독주인가? 그리고 또 시나위는 무엇인가? 반만년의 역사속에 우리는 독주만 했나? 거지 발싸개 같은 주장이다. 서양오케스트라는 화성악을 기본으로 음악은 만든다. 그래서 악기의 음질을 고르게 만들어 하나의 소리로 만들려고 발전해왔다. 우리 악기는 같은 악기라도 음색이 다르다. 합주를 할 때 다른 음색 때문에 오는 오묘한 조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양의 조화다.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조화롭게 연주한다. 난 단 한 번도 궁중음악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해다. 서양음악이 앙상블중심이라면 우리 음악은 조화가 중심이다. 그리고 재즈도 그 음색을 바꾸면서 평균율이 아닌 음정을 내면서 발전했다. 현대의 전자음악도 같은 악기의 음색을 바꾸면서 새로운 조화를 찾아 나서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옛날부터 그런 오묘한 음색의 악기로 음악을 한 것이다. 한국 악기의 음색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이다.

그는 말한다 “국악기의 변신이 필요하다. 국악기 음역에 변화를 주는 것이 곧 우리 음악의 전통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국악기가 수 천 번의 변신을 한다고 할지라도 전통음악은 여전히 전통악기로 연주할 테니까 말이다.” 국악기 음역이 넓히는 것은 찬성이다. 현대에 다양한 음역대의 음악을 듣고 싶은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허나 음역대와 음정은 다른 것이다. 세계 전통음악에서 어디 평균율로만 연주하고 노래하는 나라가 있는가? 클래식이 만들어진 유럽에서도 각 민족만의 고유한 음정을 사용한다. 플라맹고, 이탈리아 깐쵸네 등을 잘 들어봐라 그들 언어만이 낼 수 있는 음정들을 낸다. 서양음악 표현 방법 중에 칸타빌레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듯이”란 뜻인데 노래는 언어로 된 것이다. 그 고유한 언어는 평균율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다. 이탈리아 언어의 고유한 음정이 여기서 나온다. 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음역대를 넓히는 것도 있지만. 우리 음정을 서양 평균율화 하자는 것이 골자다. 만약 평균율로 다 바꿔버리면 우리음정도 바뀌게 된다. 전통악기로 연주한다고? 웃기지마라 우리음정은 다 사라질 것이다. 이미 젊은 사람들은 판소리도 평균율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가까운 주변나라들을 보라 중,북,일, 대부분 사라졌다. 지조 높으신 몇몇분이 아니었으면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다양한 세계음악 연주를 시도하며 우리 전통악기 개량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국악기(도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발전이라 포장하는데 사실 개조를 하자는 것이다. 있는 시스템을 다 바꾸는 것이 어찌 발전인가? 일본이 우리나라가 미개하다고 발전을 돕겠다면서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 것을 천시하는 것은 식민사관이다. 그냥 솔직하게 한국 개량악기로한 클래식 악단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이 옳을 것다. 왜 국악도 안 하려 하면서 국악단의 이름으로 주장하는가? 국악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발언이다. 그리고 국악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는 악기 인데 어찌 국악기 개량이라 하는가? 국악기의 형태를 이용한 클래식에 적합한 새로운 개량악기라고 하는 것이 바른말이다.

그는 말한다. “국악기가 누구나, 어떤 음악에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악기로 변화하고,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현시대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깨질새라, 끊어질새라 조바심 내며 끌어안는 것만이 전통을 보존하는 길은 아니다.” 그는 전통을 보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그의 글에 온고지신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서양음악만이 오로지 보편적 음악인 것이다. 춤으로 치자면 발레만이 보편적 춤인 것이다. 그가 국악단의 예술감독이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누구나 우리악기로 쉽게 연주 할 수 있도록 좋은 국악곡을 많이 만들어어야 한다고, 역사적으로 봐도 서양음악 작곡가가 훨씬 많다. 서양식 작곡법으로 만든 곡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중에 빛나는 곡들이 보물처럼 나타난다. 그런데 몇 되지 않는 국악 작곡가들에게 이 말은 무슨 의미가 되는 것인가? ‘선배들이 작곡했던 방법은 더 이상 필요없다. 모두 서양식으로 작곡하면 된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럼 우리만의 독특한 표현법은 사라진다. 선배들이 어떻게 우리 것을 창작했는지 분석하고 지금 시대에 맞는 우리 곡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평균율 맞본지 꼴랑 20년 밖에 안되었는데 보편적 음악을 운운하는 것은 참 가소롭다. 우리 음악을 작곡하다 돌아가신 당신들의 선배들을 기억하여라.

그는 말한다. “전통의 존속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현대적 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처럼 국악기의 음악적 유용성을 확장하는 가운데 대중적 음악생태계를 조성할 때 전통음악 역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말한다. 서양 클래식에 존속하기 위해 국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국민을 속여 개조를 도모하고, 서양 클래식화 된 음악을 국악으로 자리 매김 할 때 전통은 박물관에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위대하다 추앙을 받겠지. 우리의 국악이 (치세지음-세상을 지배하는 서양클래식음악)에 들어갔다고 기뻐하겠지. 고로 최상화씨께선 서양클래식음악 콤플렉스가 있다고 합리적 추정한다.

나는 다시 말한다. 국악과 평균율을 받아들인 새로운 형태의 음악은 구분해야한다. 국악기로 서양음악 연주하는 것 나쁘지 않다. 전통악기의 형태를 두고 서양평균율로 바꾸는 것 나쁘지 않다. 서양음악이 더 좋은 사람이 있고, 국악이 더 좋은 사람이 있다. 기호는 다양하니까! 그런데 근본이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우기는 것이 문제다. 왜! 국악단의 이름으로 서양오케스트라의음악을 하려 하는가? 개량 클래식 악단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왜 클래식이 국악인양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가? 재즈를 누가 흑인 클래식이라고 말하는가? 아니다. 재즈는 재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음악을 할 거면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국악단에서 나가라. 필자는 새로운 (퓨전국악으로 잘못 부르고 있음)음악을 “코리엔탈뮤직”, “코리엔탈음악”이라 한다.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한국적 음색의 악기로 서양음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음악. 한국적이며 탈국악적인 음악. 이것은 국악이 아니다. 국악은 국악 나름대로 발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국악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녹아들 수 있다. 국악을 한다는 당신들이 국악이 아닌 것을 국악이라 하면 우리 음악은 사라질 것이다.

국악은 국악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고유한 음정이 살아있는 인류의 유산이다.

2016년 병신년 11월 25일 홍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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